BORN

1986년 7월 태생.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람.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할아버지가 건축업을 하셔서 금수저로 태어난듯했으나, 5번의 보증으로 전 재산이 날아가는 현상을 목격. 자연스레 흙수저 대열에 합류.

Childhood | 어린시절

캠핑과 낚시를 좋아하던 아빠 덕분에 눈만 뜨면 숲 속 텐트 일 때가 많았고, 연년생 오빠를 쫄래 쫄래 따라다니며 사내 아이처럼 자람. 인형보다는 비비탄 총이, 고무줄놀이보다 온몸으로 흙모래 뒤엉켜 놀던 추억이 더 많음.

School Life | 학창시절의 일상

1.
학창시절 친구들 사이에 쿨한 이미지를 남기고 싶던 아빠는 “학생은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내뱉음. 알코올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철저히 무시한 채 학창시절 내내 이 말이 인생의 진리라 믿음. 덕분에 우리 부모님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자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음. 초지일관 어디 가서 내밀지도 못할 성적표를 갖고 중학교를 졸업.

2.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갑자기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짐. 외부에서 자극을 받은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침대에 누워있다 공부하고 싶다는 울림이 진동함. 며칠 뒤 생애 첫 과외를 시작하면서 구구단을 난생 처음 다 외우게 됨. 학창시절 내내 수학은 아무리 찍어도 3개 이상 맞은 적 없었는데 여름방학 과외 후 3개 틀림. 기말고사 때 올백을 경험. 꼴찌로 입학했던 아이가 우등생 대열에 들기 시작.

More...

3.
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현상을 자주 마주하게 됨. 우선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짐. 여전히 왈가닥에 매일 떠들다 혼나는 게 일상이었지만, 성적이 좋아진 덕분에 도저히 미워 할래야 미워 할 수 없는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사람의 마음을 사는 법을 자연스레 익힘. 그 와중에 지난 12년간 학원 셔틀에 몸을 옮겨 다니던 학생들이 한두 명씩 다가와 눈물로 자기 삶에 대한 애환(?)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학생으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됨.

4.
학교라는 틀 안에는 특출나게 공부 잘하는 친구 몇 명, 지지리도 공부 못하는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존재 자체도 애매할 만큼 중간이란 큰 덩어리에 수많은 학생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 이들 대부분은 지난 12년 동안 남부럽지 않을 만큼 조기 교육을 받아왔지만, 특출나게 잘하기 위해서가 아닌(단지 소망일 뿐) 중간이라도 유지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실상 이 정도가 어디야 하는 수준으로 갈 테지만) 지금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됨. 과연 이렇게 학창시절을 보내는 게 옳은 삶일까에 대한 질문을 시작.

5.
질문이 질문에 꼬리를 물며 지난 12년간의 나를 돌아봄. 성적이 낮았던 것 빼곤 학창시절 매 시기마다 나쁜 짓에서 좋은 짓(?)까지 안 해 본거 없이 다 누려본 일상에 만족한다는 결론을 냄. 학창시절의 내 모습에 만족할 수 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좋은 대학”, “좋은 학생”이라는 기준이 없었던 게 큰 듯. 학창시절 매 시기마다 경험했던 놀이가 그들에겐 꿈같은 일상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성적이나 타이틀, 그 어떤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중요한 시기마다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는 일상에 집중하며 살기로 결심함.

6.
SKY 대를 들어갔다면 스토리가 더 멋지겠지만, 그 정도의 수준은 안됨. 그렇다고 부족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정신없이 놀다 3차 마감 때나 입시지원 넣는 무개념 학생이었다는 게 함정. 학창시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후회 없이 누리며 산 일상에 만족하는 걸로.

NON SPEC IN 20’S | 무스펙 20대의 일상

1.
대학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첫날 내가 다닐 대학교가 강남이 아닌 경기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 과연 오늘 이후로 이 학교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진진하게 고민함.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티 때 눈 맞은 친구와 만우절 날 캠퍼스 커플이 되어 1학년 내내 재미지게 잘 다님.

2.
2학년이 될 무렵, 친구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음. 네가 관심 있어 할 만한 회사를 소개해 줄 테니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 지방이라 기숙생활해야 한다고 해서 “야호, 독립이다”라며 휴학 신청하고 송별회까지 했는데. 웬걸, 다단계에 갇힌 친구의 디테일한 수작이었음. 눈에 힘을 주고 빨리 이곳에서 탈출하길 바란다며 쿨하게 발길을 돌렸으나 딱히 갈 곳을 잃음.

3.
이왕 갈 곳도 없으니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올까라는 생각에 여행카페를 가입. “1년 오픈티켓 항공권 공동구매자를 찾습니다. 마지막 한 분”이란 제목의 글을 보고 그 마지막 한 분 내가 하겠다며 인도랑 네팔이 어딘지도 모르고 일주만에 일단 출국.

4.
2주간 여행하고 귀국하려고 했는데 3번 연속 리턴 티켓 좌석이 없다는 소식만 들음. 무언가 안 되는 이유가 있겠지라며 집에 돌아가기를 포기. 그렇게 1년을 인도,네팔,파키스탄,이집트,지중해,아시아권역을 육로로 돌아다니다 1년 전에 산 오픈티켓의 태국-한국 구간 항공권을 알뜰히 써서 무사 귀환. 다단계에 갇힌 친구는 내게 세계 일주를 선물함. 항상 나쁜 일에는 좋은 일이 같이 온다는 것과 세상사 안되는 것을 억지로 되게 기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몸소 경험. 살아지는 대로 살아도 인생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지론을 슬슬 펼치기 시작.

5.
집에 오자마자 해외는 그리 돌아다녔는데 우리 국토를 못 봤다며 히치하이킹 무전여행을 떠남. 일주일 만에 동행자를 모으고 제주도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길거리 노숙하며 48일간 전국 일주. 목사님, 신부님, 스님에서 일반 가정집까지 뻔뻔하게 가는 데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다 무사귀환. 돈이 있으면 항상 그 범주 안에서 사고하게 되지만, 돈이 전혀 없으면 내 역량으로 결코 할 수 없는 것들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몸소 경험. 살아지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지론에 이어 무언가 결핍이 많을수록 나를 돕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지론을 슬슬 펼치기 시작.

6.
2년을 휴학하고 다시 학교에 복학했으나 시간표 몰아서 하루 이틀만 나감. 수업 끝나면 맥주라도 한잔하고 싶은데 다들 도서관에서 스펙 쌓느라 얼굴조차 볼 수 없어 매번 혼자 쓸쓸히 돌아옴. 학창시절 막연히 쫓던 “좋은 대학”이 “좋은 회사”로 이어지는 듯 했음. 학창시절 학원 셔틀에 실려 다니던 모습이 이제 자기 발로 학교 도서관을 향하고 있다는 것 외엔 별다른 차이를 못 느낌. 우리가 왜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닌 성년인지, 왜 대학에 가는지 고민해 보지 않는 듯 했음.

7.
학창시절 입시전쟁에 이어 취업전쟁이란 경쟁이 쳇바퀴 굴리듯 다시 찾아옴. 어차피 잘난 놈 몇, 못난 놈 몇을 빼면 중간의 큰 덩어리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경쟁을 하기엔 나는 너무 게을렀고, 별 티도 안 나는 중간에 들어갈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함.

8.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언제 어디든 다녀와 길 위에서 한 뼘씩 성장한 나를 발견하곤 했는데 여전히 친구들의 모습은 그대로였음. 그대로라는 게 나보다 성장이 더디다는 의미가 아닌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무언가를 하고 있음) 대학시절 내내 두 발로 지구를 돌며 길 위에서 인생을 배우던 경험과 추억이 대학의 모퉁이에 있는 도서관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비쳤을 뿐.

9.
스펙 준비하느라 바빴던 친구들과 같이 나도 나름 바쁜 몸이었음. 대학생활 내내 도서관에 간 적은 없지만 두 발로 지구를 돌며 거창하게는 자기 탐구(?)에 집중함. 길 위에서 사람과 뒤엉켜 보내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지금보다 더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

10.
대학시절 내내 여행만 다닌 것 같지만 스무 살 때부터 직장인이 될 때까지 알바를 쉬어 본 적이 없음. 낮에는 오징어 철판 집 저녁엔 4층짜리 고깃집에서 밤늦도록 알바를 한 건 기본, 주말이면 바텐더로 3년 넘게 일하면서 학업과 회사를 병행. 이때의 경험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 나의 경험을 표현하는 방식 등 내 삶의 가치관 정립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

OFFICE LIFE 직장인의 일상

1.
대학교 3학년 “공정여행”을 기획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으로 직장인의 생활을 시작. 현지 문화에 스며드는 공정여행을 기획하면서 로컬 담당자들과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간 에이전시를 끼지 않아 위험 부담이 높았지만 그만큼 작업의 깊이와 배움의 기쁨 역시 두 배로 컸음.

2.
신생 사회적 기업이라 자금 역량이 바닥이었지만 인도 바라나시 후원의 밤을 개최하면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상당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걸 경험. 대학생 활동가 수십 명, 일식/양식/한식 요리사, 5팀의 밴드 공연 섭외까지 게시글 하나로 사람을 모아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진행. 말 한마디, 글 하나가 돈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 이때의 인연들이 현재까지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각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음. 값진 경험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겠다며 퇴사.

3.
학창시절에 이어 대학시절 역시 20대에 누릴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직장 생활도 삶의 기준이 “어떤 일상을 누리고 싶은가”로 이어짐. “취준생”이라는 무한 경쟁의 출발선에 서고 싶지 않던 나는 9스펙을 철저히 무시한 채 오로지 직장인으로서 누리고 싶은 일상을 생생히 그리며 그것을 실현시켜줄 회사를 찾음.

4.
기본적으로 해외 출장이 많았으면 좋겠고, 문화 행사를 기획하는 회사였으면 좋겠다는 기준을 세움. 그중 한 기업을 정한 뒤 대표에게 메일을 보냄. 생각보다 긍정적인 회신이 온 덕분에 임원 피티를 하고 입사 확정 소식을 들음. 바로 입사하기 보다 한두 달 정도 직장인이 되기 위한 신체적/정신적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함. 흔쾌히 응해 주신 덕분에 운동과 함께 자기계발 서적을 정리하며 여유롭게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준비함. 이때 만든 식스팩이 여전히 복근에 자리하고 있음.

5.
대표님이 여자분이셨는데 멀티플레이어가 되라며 다양한 부서의 업무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심. 원하던 대로 출장은 밥 먹듯이 다녔으며, 전 세계 5성급 호텔의 모든 객실 구도, 전세기, 세계 문화, 각국의 음식 테이스팅까지 평생 내 돈 주고 못 누려볼 것들을 내 것인 양 뻔뻔하게 누리며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을 보냄. 한국에 돌아와 사무실 업무를 볼 때 역시 뻔뻔하게 칼퇴 하며 레저와 놀이에 인생 건 애처럼 다님.

6.
직장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보니 어느새 타이틀과 연봉을 쫓아간 이들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고 있는 나와 마주하게 됨. 참 아이러니하게도 “좋은데 취직하면..”인생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던 이들은 대부분 그 좋은 곳이란 델 가지 못했거나. 여전히 중간 이상은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음. 원하는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 역시 좀처럼 일상이 나아지는 모습을 그리 발견하진 못함.

월급이 나보다 두 세배 많은 친구들도 있었으나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삶의 만족도 뿐만 아니라 월급 100~200만 원의 차이가 삶의 수준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연봉과 타이틀을 쫓지 않고 직장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더 집중하며 일상을 보냄.

7.
이렇게 보면 직장이 상당히 좋았을 것 같지만, 대한민국 초초초을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센티브 대행사였다는 게 함정. 최저연봉에 슈퍼 갑질하는 회사를 상대로 매번 프로젝트를 진행. 밥 먹듯이 나간 출장지에서 24시간 풀로 깨어있던 시간이 허다했고, 모든 일에 “굳이..”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말을 달고 사는 직원들이 많은 근무 환경이었음. 그럴 때마다 회사 덕분에 누릴 수 있는 것들, 돈을 받으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누리는데 의식을 집중. 그런 마음가짐이 그 누구보다 더 좋은 경험과 성과를 끌 수 있도록 나를 이끌었음.

8.
직장생활하는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며 일했던 두 분의 상사가 계심. 아주 마르고 작은 체구에 블랫 숏컷트, 블랙 계열의 의상을 주로 입던, 밥 한 톨 안 먹고도 커피 몇 잔으로 연일 24시간 일에 몰두하던 워커홀릭 결정판 여 이사님 VS 서류 한 장 없이 말로 모든 업무를 하면서도 뛰어난 퍼포먼스와 최고의 고객 만족도를 끌어내던 남자 부장님.

워커홀릭의 결정판이던 그녀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일에만 매달린 끝에 회사에서 처참히 잘림. 서류 한 장 만지려 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자원과 사람을 활용하여 성과를 낼 줄 아는 현명한 여우로 성장에 가속도가 붙음.

9.
이 둘의 경계에서 줄타기와 성과를 애매하게 쫓던 상무님이 계심. 오랜 시간 눈에 가시였던 워커홀릭 이사님을 내쫓으면서 내가 몸담고 있던 그 부서는 그 날로 해체됨. 한두 명씩 순차적으로 잘려나가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역대 최악의 행사를 선사하며 회사에서 잘림. 그 후로 헤드헌팅이 연결해준 회사에 들어가 근무했지만 일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함. 그 후 추가 이직을 해보았으나 과장이 차장을 쫓고 부장을 쫓고 본부장을 쫓으며 기어코 그 자리에 앉아 쾌재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낌.

10.
직장을 하나의 원으로 보면 인턴 때는 점의 중앙에 있어 안전하지만 직책이 올라갈수록 돌고 돌아 점차 원의 끝 지점으로 몰리게 됨. 미친 듯이 달리다 끝으로 몰려 벼랑 끝에 선 이들을 보면서 “도대체 왜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위태로워지는 걸까” 의문을 품음. 꼬리를 물던 질문의 결론은 결국 “나”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집중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발견.

나 역시 돈을 받으면서 직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많은 것을 누린듯 해 보였으나, 그저 보이는 것을 누리는 것에 집중했지 내 안에 이미 잠재되어 있는 역량을 끌어올리고 다듬는데 그리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됨.  자연스레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성장이 필요한 시기를 마주함.

BUSINESS LIFE | 사업가의 일상

1.
직장생활하면서 서른이 되면 사업가의 길을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스물여덟의 끝자락, 어느새 그 시기가 찾아옴. 더 이상 고용할 수도, 고용될 수도 없는 사회 속에 휘청거리지 않고 “나”의 역량으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생활은 더 궁핍해졌지만, 결핍은 멘탈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무엇을 해야할지 밖을 휘젖고 찾아다닐게 아니라, 내 안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더 몰입.

2.
내가 잘하는 것을 적어내려 가다보면 쉽게 끌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잘한다고 착각했던 것들, 지금까지의 나를 만든 경험과 경력을 하나씩 지워내려가며 비울수록 쳇바퀴 돌던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달음. 무언가를 채우려 하기 보다 계속 비워내기에만 집중하며 수년간의 시간을 보냄.

3.
비우면 비울수록 변화를 갈망하며 지금보다 더 성장한 나를 만나고 싶은 욕심보다,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사소한 모든 것과 결핍에 애정이 더 깊어짐. 그럴수록 소유와 관계에 대한 집착도 점차 흐려졌고. 무엇보다 몸도 마음도 자유로워 지는 걸 느낌. 직장생활로 잠시 흐트러졌던 나의 영혼이 돈 한 푼 없이 길 위를 떠돌며 순간을 살았던 이전의 나와 다시 마주하게 됨.

4.
그런 시간 속에 점차 “어떤 사업”을 할지에 대한 고민은 “어떤 사업가가 될 것인가”로 넘어갔고, 결국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옴.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다 보니 살아온 시기마다 일상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침. 한동안 스쳐 지나가는 인생의 스틸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니, 삶이란 결국 일상을 살아가면서 내 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발견.

5.
학창시절에는 학생으로서 내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 시기마다 마주하는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며 성장해 가고 있었던 것일 뿐. 어차피 삶이란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의 연속인데,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만으로 돈이 벌리는 삶을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냄.

6.
대부분 사업을 준비한다고 하면 어떤 아이템을 정할지, 자금을 어떻게 끌어올지, 고객이 반응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업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식과 경험을 쌓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함. 그에 반해 사업을 준비하면서 온전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사업”보다 “어떤 사업가가 될 것인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스승님들 덕분임.

언젠가 혹은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인 문제와 결핍을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그 결핍을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가 사업 아이템이 되고, 이를 해결해 가며 마주하는 사람이 고객이 되고, 나의 문제도 해결하고 남의 문제도 해결하며 함께 성장해 가는 것 자체가 업이 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며 살게 됨.

7.
사업을 준비하던 당시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책”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었음.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그 부담이 덜하지만 자신의 역량으로 벌어먹고 살겠다며 독립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책만큼 자신의 가치와 소신을 알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사업을 할 때 처음 만나서 몇 시간 동안 떠드는 것보다 책을 한번 읽고 오신 분과의 비즈니스 연계 속도가 천차만별이라는 걸 주변에서 많이 보다 보니 더 그런 부담이 쌓인 듯.

8.
막상 책을 집필하는 것에 집중하려 하니 통장 잔고는 바닥을 넘어 깊은 마이너스를 향하고 있었음. 그런 찰나 하루 만에 책 쓰기다 가능할 것 같냐는 스승님의 말을 듣고, 시도해 보진 않았지만 가능할 것 같다고 함. 그날로 일주일 동안 10권의 책을 쓰는 시도를 하며 바로 | 하루만에 책쓰기 | 세미나를 시작함. 책이 언제 나올지, 무엇을 담을지 시간만 축내고 있을 시간에 책 쓰는 것만으로도 돈이 벌리는 삶을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게 (주)하루랩 회사 설립의 배경임.

9.
그날 이후 매주 하루 만에 책 쓰기 강의를 통해 책 쓰기를 망설이게 하는 착각을 하나씩 풀어내며 책 집필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매달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하루만에 책쓰기 미션에 참가해 일상의 관심사를 책으로 엮는 연습을 꾸준히 하게 됨.

10.
하루만에 책쓰기 강의 시작 한 달 만에 마이너스 통장을 플러스로 만들고, 법인 설립 전부터 상당한 선 매출을 기록하며 자본금 0원으로 시작해 매달 천만 원 상당의 매출을 꾸준히 올리게 됨. 결국 나를 위해 마음 훈련하고, 나를 위해 책 쓰기 역량을 다지는 시간 자체가 돈이 되는 일상을 살게 됨.

11.
실상 누군가에겐 월 매출 1~2천만 원이 그리 큰 금액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언제나 일보다 일상을 누리는 라이프 스타일이 맞춰있는 내겐 일주일에 하루 강의하고 한 달에 한번 내 책을 집필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매출이 유지되는 업무 환경에 만족하는 편임. 강의와 미션 참가라는 두 가지 공식 업무 스케줄 역시 노동에 묶여 있다는 개념보다, 내겐 그저 잠재된 역량을 끌어올리고 탄탄히 다지는 시간일 뿐.

12.
주하루 월천 라이프가 일상이다 보니 주변에서 이기적이란 말을 많이 들음. 어떻게 고객과 트렌드를 신경 쓰지 않고 본인 역량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벌릴 수 있냐는 질문이 많다 보니 그 의구심을 한 번에 풀어드릴 수 있도록 대놓고 | 이기적으로, 아주 이기적으로 비즈니스하기 | 정규 세미나를 오픈. 

13.
하루랩은 시작부터 세미나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회사였고 여전히 그 어떤 마케팅도 하지 않은 채 소규모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서만 고객을 만남. 회사 설립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주 금요일이면 소수의 참가자들과 함께 하루만에 책쓰기 세미나를 통해 "일상이 책이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저녁엔 이기적으로, 아주 이기적으로 비즈니스 하기를 통해 "일상이 돈이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노는것이 업이자 일상임.

14.
새로 오픈되는 강의를 나의 콘텐츠로 각색하고 그로 인해 성과를 꾸준히 낼 수 있던 원동력은 누구보다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고 지금의 수준에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들어냈기 때문인 듯.

나는 글을 잘 쓰던 사람도 아닐뿐더러 실행력이 남보다 뛰어나거나 특출나게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도 아님. 단지 타인에게 평가받기 위해 자격을 갖추기 보다 일상에서 마주한 경험 내에서만 콘텐츠를 제작하여 공유하는 사람일 뿐.

15.
마지막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면 가장 첫 번째로 묻는 질문이 사무실이 어디냐고 함. 그러면 나는 사무실이 없다고 함. 직원도 따로 없고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 역시 제로라 함. 아무리 좋은 가치와 뛰어난 역량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한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고정 지출의 위험을 제로로 만들지 않는 이상 계속 노동에 묶일 수밖에 없음. 디지털 노매드 라이프는 기본, 일상의 놀이문화공간을 늘려가는 것 자체가 내게 돈을 벌어다 주는 일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매 순간 증명하며 살아가는 게 비즈니스 운영 철학이자 내 삶의 미션임.

IN THE FUTURE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상

1.
사업의 시작부터 내 안의 결핍을 채워가는 것을 택했으니 혹여나 이 사업이 망한다 해도 그리 잃을 것이 없음. 돈을 들인 것도 없고 고객을 쫓으며 운영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내 안의 경험을 쌓고 한 단계씩 배움을 통해 성장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업이다 보니. 지금처럼 큰 기복 없이 하루랩이 꾸준히 성장하길 바람. 위험요소들을 꾸준히 마주하게 되겠지만 나쁜 일엔 좋은 일이 분명 같이 올테니 그 시기마다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며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갈 계획임.

2.
결혼식과 동시에 웨딩 관련 사업을 하고 있을 것 같음. 나는 꽤 오랜 시간 대한민국의 결혼식 문화를 바꾸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이었고 직장 다닐 때도 남들 결혼자금 모은다고 적금들 때 돈 한 푼 안 들이고 주변 사람들의 재능기부만으로도 결혼식 올리는 걸 보여주겠다는 얘기를 자주 했던 아이임.

결혼자금 모은다고 아등바등 살았는데 10분 만에 순식간에 털털 털리는 건 기본. 빚으로 대출받아 시작하는 족쇄의 연속. 무엇보다 결혼식이 시간에 쫓기듯 진행되는 것이 싫어 천천히 결혼의 순간을 음미할 수 있도록 부부의 스토리가 담긴 전시회 결혼식을 올릴 생각임.

이는 당연히 사업으로 연계될 테고 결혼식장에서 바로 고객을 받을 생각임. 구체적으로 사업이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내 결혼식과 동시에 무언가 퍼포먼스가 시작될 것 같음. 직접 운영하지 않더라도 그와 연계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임.

3.
아이가 배움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교육 분야에 몸을 담고 있을 것 같음. 개인적으로 문화 탐방 분야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인디아나 존스처럼 유적을 찾아 떠나는 기행이 아닌 일상에서 마주한 인문학적 감성이 끝없는 사고로 이어지는 학습 구도를 연구하고 싶음.

감명 깊은 영화 한 편을 보다 그 시대적 배경을 탐하게 되듯,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찾아 보고, 음악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 책과 사람을 탐하고, 사람이 남긴 흔적을 따라 역사를 탐하는 것처럼 일상에서 마주하는 인문학적 감성이 끝없는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무한대의 사례를 보며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지 않을까. 굳이 아이에게 국한된 교육이 아닌 아이든 성인이든 일상에서 문화기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으면 좋겠음.

4.
마지막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무언가 “되고 싶다” 혹은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며” 목표를 향해 가기 보다, 자연스레 그 시기마다 원하는 순간을 마주할 것 같다는 느낌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인생에서 “좋은”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없앤 것과 내가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버린 것.

지금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기 위해 기를 쓰기 보다 부족한 그대로 인정하고 그 수준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기회가 많이 찾아옴. 무엇보다 이 두 가지 핵심 가치가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더 자유롭게 했음.

5.
이 가치 덕분인지 돈을 들이지 않고 사람 덕분에 누리는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그 범위가 상당해짐. 그때마다 주변에서 어떻게 재능 교환만으로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혜택을 얻고 다닐 수 있냐고 하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언제나 동일함.

다른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고 싶게. 곁에 두고 싶게. 나눠 주고 싶게. 당신이 그 자체로 멋지고 역량 있는 사람이 되면 됨. 나는 오로지 나의 역량을 가꾸고 다지는데 하루하루를 집중하며 삶. 그러다 보니 주변에 부러울 것도, 남의 것을 탐할 이유도, 소유에 집착할 이유도 그리 없음. 세상 모든 것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미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할수록 더 얻는 것도, 더 누릴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일상에 대한 기록을 마치며

일상을 누리는 삶을 테마로 기억을 더듬어 내려가다 보니 제가 살면서 경험한 사건 사고들 중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끄집어 냈는지도 모릅니다.

좋았던 경험만큼이나 아픔을 견뎌야 하는 순간도 많았고, 제가 일상의 많은 것들을 누리는 동안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을 양보해야만 했던 이들도 많았습니다. 각자 살아온 삶에 따라 이 글을 읽는 감흥도 천차만별이겠지만 최소한 저에게만큼은 오늘 이 하루 동안의 기록이 살아온 일상을 돌아오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일상 편]을 시작으로 실패의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 배움, 가족 등 꾸준히 파트를 나눠서 기억을 끄집어 내다보면 지금보다 한층 더 성숙한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파주 하루 만에 책 쓰기 미션에 참가해 쓴 이 글을 지금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보며 다듬을 수 있게 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경제적인 만족은 기본, 항상 “나”라는 사람의 삶의 철학과 가치, 행동 그 자체가 벎이 되는 분들이 주변에 더 많아지길 바라며 나 자신과의 대화, 박하루 연대기 [일상 편]을 마칩니다. 

*SNS는 지극히 사적인 일상을 담아낸 인스타그램만 합니다.

하루만에 책쓰는 사람들과 일상에 대한 영감을 얻고 싶은 분들은 유튜브 "박하루TV"를 구독하시면, 더 다양한 영상을 무료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하루 | Instagram | Youtube | 강연 및 섭외 문의 haru@harulab.com